송강호의
넉넉한 웃음,
그 웃음 하나로
인간적인 배우
송강호는 영화 <의형제>로 새삼 그의
진가를 관객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의형제>라는 제목은 지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인상적인 수상소감을 떠오르게 한다.
“마지막으로 형제나 다름없
는 저의 가장 정다운 친구
그리고 최상의 동료인 배우
송강호씨와 이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어디 박찬욱 감독뿐이겠는가. 송강호라는
배우를 의형제 삼고 싶어 하는 세상
감독들을 일렬종대로 세운다면 그 줄의
끝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를 인터뷰하고 싶어 하는 에디터들 줄도
만만치 않을 법. 그래서 그를 만나러 가는
기분은 어린 시절 동전을 넣고 뽑기를
하는 기계에서 그토록 바라던 장난감을
획득했을 때와 같았다.
분단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영화 <의형제>가 벌써 관객 수 250만명을 돌파했다고 들었어요. 축하드립니다. 아, 감사합니다. 250만명이 아니라 정확히(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며) 265만명이 오늘까지 집계됐어요(인터뷰를 한 날은 2월 16일이었다).
관객 수를 매일 정확하게 체크하시다니, 놀랍네요. <의형제>가 이렇게 흥행에 성공할 줄 미리 예측했다고 하시던데요. 배우라면 당연히 본인이 출연한 영화의 흥행에 책임을 느껴야 해요. <의형제>는 220만명이 손익분기점이어서 그걸 넘은 후부터는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의형제>의 대중적인 성공은 분명 예측한 부분이죠. 배우가 흥행에 대한 감 없이 어떻게 영화를 선택하겠어요.
<의형제>는 <JSA> 이후 딱 10년 만에 ‘분단’이란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에 출연했다는 의미에서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10년 동안 시대가 변하면서 분단이라는 소재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어요. <JSA> 땐 분단을 슬프고 비극이란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면 <의형제>는 조금 가벼워졌다고 할까요. 시대의 흐름만큼이나 분단이란 현실을 영화적 소재로 다르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경험하는 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강동원씨와 함께 연기한 것은 처음인데, 두 분이 놀라울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강동원씨가 영화 <전우치>를 찍을 때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이 저와 다 친분이 있었죠. 그 사람들을 통해 동원이가 어떤 사람인가 사전 조사를 좀 했는데 보기와 다르더군요. 워낙 새침하게 잘생긴 얼굴이라 성격도 그럴까 했는데 농담도 잘하고 같이 술도 잘 마신다(송강호는 영화계에서 소문난 애주가다) 해서 맘에 들었죠. 실제로 만나서 작업을 해 보니 듣던 대로 괜찮은 후배여서 마음이 잘 맞았어요.
강동원씨와 함께 영화를 작업하니 외모마저 비슷해진다는 말을 인터뷰 때 해서 송강호 인생 최초로 네티즌들의 악플이 달리는 거 아니냐는 소문도 들리던데요(웃음).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쩌렁쩌렁 울리는 큰 소리로 웃으며) 그거 당연히 그냥 농담한 거죠.
<박쥐>에서 노출로 많은 화제를 모았는데 이번 <의형제>에서도 두 번의 노출 장면이 있었어요. 이젠 노출 연기에 자신이 생기신 건지요. (또다시 인터뷰 장소가 그의 박장대소로 가득 차며) 이거, 이거 본의 아니게 오해받게 되었네요. <의형제>에서 닭이 있는 걸 보고 놀라서 맨몸으로 목욕탕에서 튀어나오는 장면과 냉장고 앞에 쭈그려 앉으면서 뒤태가 노출되는 장면은 영화 전개상 꼭 필요한 신이었어요. 전직 국정원 요원이었지만 측은하고 외로운 중년 남자에 불과하다는 인간미를 보여 줘야 했거든요. 그런데 쭈그려 앉는 장면을 관객 분들이 오히려 유쾌하게 보시더라고요.
그동안 출연한 작품을 보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한 번도 여성 감독과 작업한 적이 없으셨어요. 앞으로 여성 감독과 함께 작업할 의향이 있으신지요? 제가 여성 감독님들과 작업한 영화가 없는 건 순전히 활동하시는 여성 감독님들의 수가 적기 때문이고요. 그분들이 만드는 작품이 임순례 감독님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처럼 대부분 여자 배우들을 써서 기회가 없었네요. 당연히 기회만 되면 그분들과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이 기사가 나가면 여성 감독들의 러브콜이 빗발치겠어요. 하하하.
동료배우 최민식은 십자가를 멘 거다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가 트로이카로 불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솔직히 지금은 송강호라는 배우가 독보적으로 앞서 가 있는 느낌입니다. 사실 동료 배우 최민식씨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지난 스크린 쿼터 때 문화훈장까지 반납하며 정부에 항의했던 때를 기점으로 배우로서 활동이 주춤해진 게 사실이거든요. 우리나라 영화를 위해 최민식씨가 홀로 십자가를 짊어졌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크린 쿼터 이야기가 나오니 요즘 영화진흥위원회와 시네마테크의 갈등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지만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아닙니다. 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요즘 영진위의 행동을 보면 정말 우리나라가 아직도 문화적으로는 후진국이구나, 통탄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독립영화와 고전영화를 공유할 수 있는 비영리 단체의 운영에 간섭한다는 건 말도 안 돼죠. 스크린 쿼터에 이어서 이런 사태까지 오다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네요. 아무리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시대라고 해도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면 우리나라 영화의 미래는 밝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사실 송강호씨는 연극배우 출신으로 처음 영화를 찍었을 때 인터뷰를 보면 자본주의적인 영화판이 낯설어서 대학로가 여전히 편하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지금은 어떠신지요? 연극은 늘 마음 한구석에 돌아가고 싶은 고향 같은 존재죠. 연극 무대에 안 서느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데 연극은 그 기간 동안 정말 모든 것을 올인해야 하거든요. 지금은 여러 가지 상황으로 그럴 여유가 없어 마음은 있지만 무대에 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게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산다는 건 어쩌면 늘
행복해야 한다는 갈망을 버리면
더 편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인생의 해피엔딩을 꿈꾸지 않는다
<JSA> 때의 흑백사진, <살인의 추억> 때 얼굴 클로즈업 장면 등 유난히 엔딩 장면에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로서 만약 본인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엔딩 장면은 어떨까요? 글쎄요,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마냥 행복한 해피엔딩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좀 차갑고 냉정하게 끝났으면 해요.
아니, 왜요? 누구나 해피엔딩으로 마치는 인생을 꿈꾸잖아요. 더구나 송강호씨는 최고의 배우라는 명예와 부를 모두 이룬 분 아닙니까. 배우로서는 그럴지 몰라도 나머지 부분에서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해요. 저도 한 집안의 가장으로, 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로 모든 사람들이 겪는 고민들을 하고 살아요. 지금 누리는 게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산다는 건, 어쩌면 늘 행복해야 한다는 갈망을 버리면 더 편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후속작으로 <밤안개>에 출연하실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조직의 보스 역으로 나와요. 이제와는 조금 다른 정적인 느낌의 연기를 선보일 것 같습니다. 둥글둥글한 이미지보다 날카로운 이미지의 보스로 변신할 테니 기다려 주십시오. 하하하.
송강호가 떠나고 난 자리엔 아메리카노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커다란 머그잔이 그의 훈훈한 흔적을 지키고 있었다. 음악팬인 어머니가 종종 “얘야, 엄마는 비틀스의 전성시대를 함께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뿌듯하게 들려주시던 게 기억난다. 세월이 흘러 엄마 나이가 되면 아마 영화팬인 나는 엄마의 말투 그대로 “엄마는 송강호의 전성시대를 함께한 사람이란다”라고 말할 것 같다.
Editor 김서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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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6 11:02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