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시끄럽게 통화하는 소리나 물건을 파는 소리들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겠죠. 귀에서 나오는 음악은 참 신기하게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기분에 맞춰 고른 음악이 주위를 기분 좋게 감싸고 소음을 차단하죠.
계절에 따라 듣고 싶은 음악도 바뀌는 것 같아요. 여름이 신나는 댄스 음악의 계절이었다면, 가을은 아무래도 좀 더 차분한 음악의 계절인 듯 합니다. 선선한 바람에 가벼운 팝송을 흥얼거리기 좋고, 약간 쌀쌀한 저녁때는 재즈의 선율이 잘 어울리는 것 같지요? 가을 햇살이 고양이처럼 목 뒤를 간질이는 나른한 오후에는 편안한 클래식을 틀어놓고 잠시 눈을 감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가을에 잘 맞는 음악들이 어우러진 영화들이 있는데요. 가을이 시작된 이번 주말,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감상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원스 - 애틋한 선율의 아일랜드 팝
갈색 빛이 가득한 더블린 거리에 기타를 치며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 앞에 고장 난 진공청소기를 든 여자가 다가옵니다. 가슴 속에 실연의 상처 하나 쯤은 가지고 있을 보통 남자와 여자인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지요. 고유명사 대신 대명사 ‘그(The Guy)’와 ‘그녀(The Girl)’로 설정되어 있을 뿐입니다. 영화 <원스(Once)>는 평범한 우리와 같은 그들의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그는 낮에 아버지 가게에서 진공청소기를 수리하고, 저녁에는 길에서 기타를 치며 자작곡을 부릅니다. 그녀는 길에서 꽃을 팔면서 그의 노래를 들었지요. 피아노를 치는 그녀는 집에 악기가 없어 악기판매점에서 연습을 합니다. 그녀의 피아노를 듣고 그는 자작곡을 같이 연주하지요.
“나는 당신을 몰라.
그러기에 더욱 더 당신을 원해.
서로를 속이는 의미 없는 게임은 우리를 지치게 할 뿐이야”
그가 이 노래를 부를 때 그녀가 화음을 넣습니다. 그가 만든 다른 곡에 그녀는 가사를 붙입니다.
“진정 나를 원한다면 내 마음을 알아줘요.”
이 가사는 그가 아닌 다른 남자를 위해 썼던 시지만, 그들은 같이 노래를 부르지요.
그와 그녀는 막차가 끊기기 전의 연인들처럼 서두르지 않습니다. 과거를 무턱대고 잊으려 애쓰는 것도 아니구요. 담담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물어 보고,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그들 사이에는 키스도, 스킨십도 없지만 노래할 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충분히 깊고 따뜻합니다.
작년 9월에 개봉했던 저예산 영화 <원스>는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조용히 흥행해 장기상영으로 이어졌습니다. 많은 이들의 블로그를 장식한 영화 속 노래 ‘Falling Slowly’가 들어 있는 OST도 3만장이 넘게 팔려서 화제가 되었지요. 영화 속 그와 그녀는 실제로도 활동중인 뮤지션인데요. 이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18살 차이를 극복하고 말이죠.
말할 수 없는 비밀 - 풋풋한 사랑이 담긴 피아노 선율
상륜(주걸륜)은 오랜 전통을 가진 예술학교에 이제 막 전학 온 학생입니다.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요. 상륜은 학교를 둘러보던 중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에 끌려 오래된 연습실을 찾게 됩니다. 그곳에는 샤오위(계륜미)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습니다. 샤오위와 금세 친해진 상륜은 점점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게 됩니다. 그렇지만 샤오위는 어딘지 모르게 비밀이 많습니다. 자신이 치고 있던 곡목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며 가르쳐 주지 않지요. 한편 바르고 반듯한 모범생 칭이는 상륜에게 점점 호감을 느끼고 다가옵니다. 샤오위는 둘을 오해하고 슬며시 사라져 버립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사실 곡의 제목에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샤오위는 수업 시간에 잘 보이지 않고, 자꾸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한국영화 <도마뱀>의 그녀가 자꾸 사라지듯이 말이에요. <도마뱀>의 그녀에게 불치병이 있었다면, 샤오위에게도 숨기고 싶은 큰 비밀이 있겠죠. 그런 비밀이나 결말이 이 영화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거기에 집착해서 본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죠.
누구나 학창시절에 겪었을 법한 풋풋한 첫사랑과 가슴 설레는 감정에 주목해서 본다면 많이 공감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해 좋아하는 감정이 생겨나는 시기, 예쁜 추억들을 만들어 나가는 시기, 그리고 작은 오해가 불러 일으킨 상처들까지...
이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가장 인상적으로 꼽는 장면은 피아노 배틀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제 막 전학온 상륜이 일명 피아노 왕자 위하오 선배에게 도전장을 내밉니다. 피아노 왕자는 못 치는 곡이 없고, 아무도 상대가 안 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네요. 피아노 왕자가 쇼팽의 곡을 바꿔서 친 곡을 듣자마자 원곡과 바꾼 곡으로 다 칩니다. 또한 피아노 왕자가 친 곡보다 더 빠르게 즉흥 연주를 하고, 피아노 왕자가 두 손으로 친 곡을 한 손으로만 쳐버리기도 합니다. 음악으로 화려한 배틀을 붙는 게 정말 멋있더라구요.
카핑 베토벤 - 마에스트로를 지휘한 여자
<카핑 베토벤>은 베토벤과 카피스트 안나 홀츠의 이야기입니다. 이미 귀가 안 들리게 된 것이 상당히 진행중인 베토벤에게 음악학교 작곡과 최고 성적 학생 안나 홀츠가 카피스트로 나타나지요. 교향곡 9번 '합창'의 초연을 4일 앞두고 있던 시점입니다.
'합창'의 초연 장면. 영화는 이 장면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장면에 엄청난 힘을 쏟아 붓습니다. 그렇지만 이 장면을 영화의 마지막으로 가져가며 대화합의 길로 마무리짓는 식상함을 선보이진 않아요. 무대 뒤쪽 대기실, 베토벤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습니다. 지휘를 할 수 없다는 그 앞에 안나가 나타나죠. 안 보이는 곳에서 자신이 박자를 알려 드리겠다고. 베토벤은 단상에 오릅니다. 안나 또한 연주자 사이에 앉아 지휘를 시작하고 안나의 손짓에 맞춰 마에스트로 또한 지휘를 해 나갑니다.
교향곡 9번이 흐르고, 각 악장의 주제 선율, 그리고 잘 편집한 4악장까지 음악은 영화에 맞춰 자기 몸을 바꿉니다. 제 1 바이올린, 제 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플룻, 오보에, 호른, 심벌즈, 팀파니... 이 모든 악기에 각각의 카메라가 따르고 있습니. 카메라 600대는 악기 600개의 역할을 해내죠. 샷과 샷은 음표가 되고, 편집은 마디가 됩니다. 9번의 음과 음계를 적절하게 표현해내는 편집은 그야말로 감동적이에요.
음악이 절정으로 치달을 즈음, 마에스트로와 안나를 보여주는 카메라가 약하게 떨리기 시작합니다. 떨림이 최고조에 달하고, 음악은 끝나죠. 그리고 정적이 이어집니다. 이 모든 음은 베토벤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안나는 그를 기립박수치는 청중을 향해 돌려 세우고, 베토벤에게는 이제서야 박수 소리가 들리게 됩니다. 익숙한 레퍼토리여서 자칫 식상할 수도 있는 교향곡 9번, 클래식 음악에 대해 알지 못해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이름 베토벤. 이 둘의 만남을 식상하지 않게 그리며, 섬세하게 표현해낸 영화랍니다.
스윙걸즈 - 재즈는 결코 어렵지 않다
영화 <스윙걸즈>의 여고생들은 재즈의 J도 모르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이들이 좋아하지도 않았던 악기를 사게 됩니다. 시작은 보충수업을 빠지겠다는 조금은 불순한 의도였을지 모르나 그 끝은 창대하였죠. 여름 보충 수업을 하느니 차라리 재즈를 배워 대회에 나가겠다는 발상, 야간 자율학습과 보충학습에 찌들어 본 사람이라면 공감가시죠?
악기를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중고악기를 사고, 선생님을 찾아 다니고 그들의 열정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가게에서는 사고를 내서 돈을 못 받고, 기껏 산 중고악기는 다 고장이 나거나 녹슬어 있습니다. 힘들게 찾아낸 선생님은 사실 재즈를 들을 줄만 알지 연주할 줄은 모르는 사람이었구요. 아,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열정이 있으면 반드시 상응하는 결과가 있기 마련이죠. 멧돼지에게 쫓기면서도 자연산 송이를 따서 돈을 벌고, 중고악기를 자동차 용접하는 애들에게 맡겨서 수선합니다.
결국 대회에 참가하게 된 '스윙걸즈 앤드 어 보이' 팀은 정말로 우여곡절 끝에 결선장에 도착합니다. 좋아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했던 재즈를 어느덧 몸으로 즐기게 된 이 아이들은 관객들에게 그 마음을 전합니다. 거기에는 잘난 척 하는 폼도, 어려운 재즈 용어도 없지요. 고개를 끄덕이며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며 즐겁게 음악을 즐기는 연주자와 관객이 있을 뿐입니다. 영화가 끝나면 나도 모르게 어느덧 재즈 선율을 흥얼거리게 되네요. 보면 볼수록 유쾌하고 기운이 나는 영화 <스윙걸즈>를 추천해 드립니다.
헬로티비로 가을 음악 영화들을 다시 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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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원스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면서 기분이 좋아지는데..
2008/09/05 10:22 [ ADDR : EDIT/ DEL : REPLY ]다시 찾아서 보고 싶네요.. OST도 좋아요~
보니님도 tv를 사랑하시는 한분중 아닌가 싶어요
2008/09/05 10:44 [ ADDR : EDIT/ DEL ]자주 방문해주시고 감사해요~^^
원스랑 말할수 없는 비밀 정말 재밋게 봤었는데 음악들이 정말 기억에 많이 남는 영화들이였던거 같아요
2008/10/02 15:07 [ ADDR : EDIT/ DEL : REPLY ]